
강서 출신의 선비 맹용담은 거인 급제자인 주생과 함께 도성에 묵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우연히 어느 절에 들어갔다. 절 안에는 널찍한 전각도 참선하는 방도 없었고, 옷매무새를 풀어헤친 늙은 승려 하나만 있었다.
승려는 손님들을 보자 옷을 여미고 앞으로 나와 맞이하더니, 이곳저곳으로 안내하며 볼 만한 것들을 빠짐없이 보여 주었다. 불당에는 지공의 상이 있었고, 양쪽 벽에는 사람과 사물이 살아 있는 듯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동쪽 벽에는 여러 선녀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 한 소녀는 아직 시집간 여인처럼 머리를 틀어 올리지 않은 처녀였다. 소녀는 꽃을 따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앵두 같은 입술은 금방이라도 달싹일 듯했고, 촉촉한 눈에서는 물기가 넘쳐흐를 듯했다.
주생은 오랫동안 눈도 떼지 못한 채 소녀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구름을 탄 듯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전각과 누각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인간이 사는 곳과는 전혀 달랐다.
한 늙은 승려가 수많은 청중에게 둘러싸여 불법을 설하고 있었다. 주생도 사람들 틈에 섞였다. 잠시 뒤 누군가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앞서 보았던 소녀가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주생은 곧바로 뒤를 따라 굽이진 난간을 지나 작은 방 앞에 이르렀으나, 감히 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소녀가 뒤돌아보며 손에 든 꽃을 흔들어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함께 무릎을 꿇고 천지에 절을 올린 뒤 부부가 되어 일어섰다. 그 뒤 신부는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있으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이틀쯤 지나자 소녀의 벗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주생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모두 웃으며 말했다.
“얘, 너도 이제 시집간 몸이니 처녀처럼 머리를 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
그러고는 비녀와 머리 장식을 건네며 가서 머리를 틀어 올리라고 했다. 소녀는 얼굴을 몹시 붉혔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명이 소리쳤다.
“얘들아, 우린 그만 가자. 둘이 있어야 좋은데 여럿이 끼면 쓰나.”
모두 다시 킥킥 웃더니 자리를 떠났다.
주생이 보기에 아내는 머리 모양을 바꾸고 나니 한결 더 아름다웠다. 높이 틀어 올린 머리와 드리개가 달린 머리 장식이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밑창이 두꺼운 장화로 쿵쿵 걷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쇠사슬이 철컥거리는 소리와 성난 말소리도 함께 들렸다. 신부는 놀라 벌떡 일어나 주생과 함께 밖을 엿보았다. 칠흑처럼 검은 얼굴에 황금 갑옷을 입고 손에 쇠사슬과 채찍을 든 사내가 보였고, 소녀들이 모두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내가 물었다.
“모두 여기 있느냐?”
“모두 있습니다.” 소녀들이 대답했다.
사내가 말했다.
“너희 틈에 인간을 숨겨 두었다면 당장 고하라. 스스로 화를 자초하지 마라.”
소녀들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사내가 그곳을 뒤지려는 기색을 보였다. 신부는 몹시 겁에 질려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두려움에 떨며 주생에게 “침상 밑에 숨으세요”라고 이르더니, 벽에 난 작은 격자창을 열고는 사라졌다. 주생은 숨어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잠시 뒤 장화 소리가 쿵쿵 울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고, 말소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해졌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으나, 밖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니 귀에서는 메뚜기라도 들어간 듯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눈은 불에 타는 듯했다.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아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한편 맹용담은 벗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승려에게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승려가 대답했다.
“불법을 설하는 것을 들으러 갔습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맹용담이 물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요.” 이렇게 답한 늙은 승려는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주생! 어찌 그리 오래 돌아오지 않으시오?”
그러자 벽 위에 주생의 모습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말을 듣듯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승려가 다시 말했다.
“여기 벗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소.”
그러자 곧 주생이 벽에서 내려왔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리는 떨리는 가운데,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굳어 서 있었다. 맹용담은 몹시 놀라 조용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연인즉, 주생은 침상 밑에 숨어 있다가 천둥 같은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려고 뛰쳐나왔던 것이었다.
그때 모두 벽화 속에서 처녀의 머리를 하고 있던 소녀가 이제는 시집간 여인처럼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생은 몹시 놀라 늙은 승려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승려가 대답했다.
“환상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제가 무슨 설명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생에게는 도무지 흡족한 대답이 아니었다. 겁이 좀 난 맹용담 역시 이 모든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절의 계단을 내려가 그곳을 떠났다.
원작: Pu Songling · English translation: Herbert A. Giles · Strange Stories from a Chinese Studio (1880)
고전 괴담·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야기입니다. 원문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