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와 나는 싸우고 있었다. 엄마는 침실 하나뿐인 비좁은 아파트에서 침실 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렸다.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가자 잠의 서늘한 손길이 손끝으로 내 척추를 천천히 훑고 올라오는 듯했다.
그 부름에 몸을 맡길 곳이 달리 없었던 나는 복도 벽장에서 담요를 꺼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막 눈을 감았을 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잠들기도 전에 잠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든 몹시 미웠다. 짜증이 난 채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선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왜요? 우리 엄마 보러 온 거잖아…….”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잠으로 이끌며 척추를 타고 올라오던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돌연 꽉 움켜쥐어 척추뼈를 마디마디 으스러뜨리는 듯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몇 시간이, 끝도 없는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림자에 가려져 코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움직여 무슨 말인가 했지만, 내가 너무 어렸던 건지 너무 피곤했던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더라면, 나중에 그가 벌로 내게 안겨 준 것에 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눈길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아, 발가벗겨진 채 훤히 드러난 기분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비웃음을 띠더니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움켜쥔 힘이 조금 풀렸다. 겨우 고개를 왼쪽으로 돌릴 수 있게 된 나는 ‘그’가 무엇을 보는지 살펴보려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무것도 없는 곳을 몇 초간 바라보고 있자니, 누군가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느낌이 났다. 그러고는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밤, 나는 거실에서 자지 않겠다고 버텼다. 여전히 싸우는 중이었지만 엄마를 설득해 거실에 머물게 하고 나는 침대에서 잤다. 현관문에서도, 그 낯선 남자에게서도 안전한 곳이었다.
나는 금세 잠들어 더없이 행복한 곳으로, 그토록 멋진 텅 빈 공허 속으로 빠져들었다.
톡.
톡.
톡.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곧바로 깨어났다. 무엇이 있을지 정확히 알았다. 눈을 감고 창문을 등지도록 돌아누운 뒤 베개로 머리를 덮었다.
일어나지 않고 버텼다.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결국 그도 두드리기를 멈추고 떠날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었다.
톡.
톡.
톡.
아무리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그 소리는 곧장 뇌를 파고들었다. 나는 몸을 떨며 마지못해 침대 위에 일어섰다. 커튼을 젖히자 얼굴 없는 형체가 보였다.
공포에 질린 순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내 척추를 단단히 움켜쥐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 없는 그 끔찍한 존재에게서 한 치도 물러날 수 없었다. ‘그’는 장난스럽게 유리창에 손가락을 댔다.
내 코가 창에 닿아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바싹 마르고 갈라진 입술이 천천히 비틀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톡.
톡.
톡.
손가락이 유리창을 두드릴 때마다 단검이 몸속으로 날아드는 듯했고, 폐 속의 공기가 뜯겨 나갔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고 고통에 움찔할 때마다 ‘그’는 혼자 낄낄거렸다.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머리에 쓴 후드가 움직였다.
고통스러울 때 기억에 남는 것들은 참 이상했다. 질식하면서 느끼는 타는 듯한 아픔에서 잠시라도 정신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붙들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 유리창에서 손가락을 떼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텅 빈 폐가 곧 찌그러질 것에 대비하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톡.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 라디오에서 잡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고, 나는 눈을 떴다. 그곳에는 먹물처럼 새까만 어둠만 있었다.
이런 일이 몇 주 동안 계속되었다. 밤이면 밤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는 매일 밤 두려움에 떨었다. 사악한 주인에게 멱살을 잡힌 채 창가로 끌려가는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말 안 듣는 꼬마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보여 주려는 것 같았다.
도망쳐야 했다. 더는 그 공포를 마주할 수 없었다. 엄마를 설득해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는 밤늦도록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다가 마침내 지쳐, 잠이라는 황홀한 심연 깊숙이 끌려 들어갔다.
톡.
남자의 손가락이 여태껏 느껴 본 적 없는 힘으로 어깨를 누르자, 칼날이 깊숙이 파고드는 듯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문이 잠겨 있는데 어떻게 들어왔어요?” 내가 물었다.
첫날 밤 이후 우리 사이에 오간 첫마디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씩 웃는 표정뿐이었다. 그때 친구가 말을 걸어 나는 화들짝 놀랐다.
“누구랑 얘기해?”
그 말과 함께 ‘그’는 사라졌다. 나는 안도하며 친구에게 잠꼬대를 했나 보다, 다시 자라고만 말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그’를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고작 열 살도 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얼마 전, 스물네 번째 생일이 지나고 일주일 뒤에 ‘그’를 다시 보았다. 나는 ‘그’를 잊고 지냈다. 몇 주간의 공포를 다시는 끄집어내지 못하도록 무의식 깊숙이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톡.
톡.
톡.
그 순간 모든 것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나는 다시 이불 속에서 겁에 질려 떨던 열 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씻지 않은 그릇과 술에서 풍기던 악취였다. 나는 일어나 담요를 몸에 두르고 커튼을 젖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채 서 있다가 그저 괜한 의심이려니 하고 털어 버렸다.
푹신하고 편안한 침대에 다시 누우려고 돌아섰는데, 거기에 ‘그’가 있었다. 내게서 불과 4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전과 똑같은 후드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얼굴에도 똑같이 멍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은 다 사라졌어.”
‘그’는 혼자 낄낄거리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라졌다니, 무슨 말이에요?”
“약속했던 걸 네게 줬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더니 내 침실 문을 나갔다.
“무슨 말이냐고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한테 뭘 약속했다는 거예요! 대답해요!”
나는 복도를 내달려 룸메이트의 방으로 갔다.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손마디가 부딪친 자리에 붉은 얼룩이 남을 때까지 두드렸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벽에 쾅 부딪쳤다. 방 안에는 ‘그’가 서 있었다.
“그 친구는 여기 없어. 다른 사람도 아무도 없어. 이제 넌 정말로 혼자야.”
그게 2주 전이었다. 나는 미쳐 버릴 것 같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남아 있을까 싶어 이 글을 쓴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게 틀림없다.
‘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배터리는 곧 바닥날 것 같고, 전기가 끊긴 지도 나흘이 되었다. 누구든 좋으니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그저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더는 못 버티겠다. 어딘가에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혼자 죽고 싶지 않다.
원작: XanCrews · Creepypasta Wiki · Empty
현대 커뮤니티에서 창작한 괴담을 한국어로 번역한 글입니다. 실제 사건으로 검증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원문 읽기
한국어 번역·편집: K-Reaction. 원문과 이 한국어 번역·편집본 및 삽화는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번역, 문단 나누기, 삽화 추가를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