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ACTION · WORLD REACTIONS

세계의 기묘한 이야기

세계 곳곳의 무섭고 기묘한 이야기. 잠들기 전, 한 편 더.

[일본] 몽유병

685 ::2006/03/16(木) 04:29:38 ID:8hW79fuA0

이모할머니 얘기인데 옛날에 몽유병이었대.

어쩌면 여우에 씌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일단 몽유병이라는 걸로 치고 얘기를 진행할게.

이모할머니는 잠에서 깨면 왜인지 강변에 서 있기도 하고

산속에 있던 적도 있어서 증조할아버지(이후 아버지)와 상의를 한 결과

일단 가족들이 교대로 감시를 하기로 했어.

그런데 증조할머니(이후 어머니)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감시에 참여하지 않았어.

첫날은 아버지가 감시를 했는데 이모할머니가 일어났을 때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앞에 서서 막아보기도 하면서

정말로 잠들어 있는지 확인한 뒤 몸을 흔들어서 깨웠대.

다음 날은 작은할아버지(이후 오빠)가 아버지와 똑같이 깨웠어.

물론 이모할머니(이후 언니)는 자기가 일어났었다는 건 기억도 못 했어.

그다음이 할머니(여동생) 차례였어.

여동생도 앞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말 잠들어 있는지 확인했는데

그후 언니를 깨우지 않고 이다음 뭘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어.

언니는 잠옷 차림 그대로 맨발로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잠시 멈춰 선 뒤 방향을 바꿔 조금 떨어진 목초지 쪽으로 걷기 시작했어.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고 가로등도 없어 주변은 어두컴컴했어.

여동생은 돌멩이에 발이 걸리면서 간신히 따라갔는데

언니는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어.

은연중에 언니는 휘청거리며 걷어갈 거라고 상상했기 때문에 여동생은 많이 놀랐다고 해.

목초지에 도착하자 언니는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걸어 다녔고

마침내 목초지 한가운데에 멈춰 섰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동생은 다음 행동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길래 언니에게 다가갔어.

얼굴 앞에 손을 대봐서 잠들어있는 것은 확인해 봤지만

여기서 언니를 깨우면 자기가 부모님 말을 어긴 것이 들킬 것 같았어.

그래서 어떻게든 잠든 채로 집에 데려갈 수 없을까 생각해 봤지만 업고 갈 힘은 물론 없었어.

결국 깨울 수밖에 없어서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했던 그때,

언니가 여동생을 향해 슥 하고 손을 뻗었어.

영문을 모르겠지만 여동생은 무심코 그 손을 잡아봤어.

언니에게는 딱히 아무 변화가 없었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어.

손을 잡고 살짝 끌자 언니는 그대로 따라왔어.

방향을 바꾸면 언니도 그에 맞춰서 자는 채로 걸었어.

가족들에게 들키면 혼날 것 같아서 여동생은 그대로 언니를 이끌고 집에 돌아갔어.

686 ::2006/03/16(木) 04:30:39 ID:8hW79fuA0

여동생은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언니를 따라 가게 됐어.

언니가 가는 곳은 매번 같지 않았어.

어느 날은 다리 밑, 어느 날은 논 맞은편,

뭔가를 찾듯이 빙빙 돌아다니다가 멈춰 섰어.

여동생은 언니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서

더러워진 발을 닦고 들키지 않도록 몸을 흔들어서 깨웠어.

그런 일상이 1달 정도 이어졌다고 해.

몽유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 기도사라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어.

여동생도 처음에는 꼭 탐험을 하는 기분이어서 재밌기도 했지만

이때쯤은 솔직히 말하자면 질린 상태였고

다음에 같이 갈 때는 방을 나서기 전에 깨울 생각이었어.

그리고 여동생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정한 그날,

언니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평소처럼 맨발로 밖으로 나가서 멈춘 후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

여동생은 거의 습관적으로 언니의 뒤를 따라갔는데 나아가면서 의문이 생겼어.

지금까지는 집 주변, 적어도 걸어갈 수 있는 곳만 갔었는데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걸어서 3시간이 걸리는 도시로 가는 길이었어.

옆에는 철도가 있어서 집 근처와 도시를 연결하고 있었어.

이대로 도시 쪽으로 쭉 가는 걸까?

여동생은 집에 갈 시간도 생각해서 어느 정도까지 가면 강제로 집에 끌고 갈 생각을 했어.

언니는 그대로 계속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어.

여동생은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뭐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

굳이 말하자면 선로 너머에 터널이 하나 있는 정도였는데

길 중간이라 특정 장소인 것도 아니었어.

오늘은 여기서 끝이구나 하고 언니의 손을 잡으려고 한 순간,

언니는 튕겨나가듯이 달리기 시작했어. 곧장 터널 쪽으로.

길과 선로를 가르고 있는 덤불을 헤치고 선로의 자갈을 밟으며 똑바로.

여동생은 오직 언니의 발소리에만 의지하며 밖보다 훨씬 더 깊은 어둠 속을 나아갔어.

687 ::2006/03/16(木) 04:31:11 ID:8hW79fuA0

[키이이이이이!]

곧 앞쪽에서 비명이 들렸어. 언니 목소리야.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가보니

출구 쪽 반원 모양의 [밤]과 터널 안의 [어둠]의 차이 때문에

언니 모습이 간신히 실루엣으로 보였어.

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보였대.

그리고 언니는 벽으로 다가가서 벽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어.

뭔가를 파내려는 것처럼 보였어.

언니는 이따금 신음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 벽을 미친 듯이 할퀴었어.

무서워진 여동생은 평소처럼 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언니는 말을 듣지 않았어.

그래도 다시 손을 잡으려고 하자

[키익]이라고도 [가아]라고도 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위협을 했어.

여동생은 서둘러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을 깨우고 상황을 설명했어.

아버지와 오빠는 창고에서 밧줄을 들고 뛰쳐나갔어.

여동생은 안내를 하기 위해 자기도 가겠다고 했지만

어딘지 알기만 하면 된다며 제지당했어.

여동생은 자기 호기심 때문에 언니가 이상해졌다고 후회하면서

언니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어.

어머니는 불단 앞에서 기도하는 여동생 옆을 밤새 지켜줬다고 해.

아침이 오고, 해가 높이 떴을 무렵 오빠만이 돌아왔어.

어머니와 무슨 얘기를 나눈 것 같았지만

그 얘기가 끝나자 차려준 밥도 먹지 않고 멍하니 눈앞을 응시할 뿐이었어.

여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도

[이제 다 끝났어.]

이 말밖에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

어머니에게 물어봐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

며칠 후 언니와 함께 돌아온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언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어.

언니의 손끝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손톱이 벗겨지고 살이 깎여 뼈까지 보였다고 해.

그 후 언니의 몽유병은 없어졌고 일상이 돌아왔어.

여동생은 아무도 설명하재주지 않아서

가끔 터널에 가서 확인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날 밤의 경험이 너무 무서워서 결국 한 번도 가지 않았어.

이 얘기를 해준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건 대체 뭐였을까.

무섭지만 알고 싶어.

하지만 그날 일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언니의 비명이 울려.]

출처·한국어 번역: 로어쟁이 · 사야님 블로그

원문 게시글: [2ch 괴담] 몽유병

출처에 표시된 이용 조건: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야기 본문은 그대로 옮겼으며, 이야기 밖에 별도로 붙은 블로거 후기는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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