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ACTION · WORLD REACTIONS

세계의 기묘한 이야기

세계 곳곳의 무섭고 기묘한 이야기. 잠들기 전, 한 편 더.

[일본] 순정파

닫힌 방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이야기 삽화
이야기 속 분위기를 재현한 삽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옆집으로 여자애 하나가 이사 왔어.

아버지는 없었고, 어머니는 어린 내 눈에도 꽤 젊어 보였어.

우리는 반은 달랐지만 금방 친해졌어. 그 애는 말수가 적고 친구도 별로 없었거든. 나도 책만 읽고 지내느라 친한 친구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 집에 놀러 갈 만큼 가까워졌지.

언제부턴가 그 애는 나한테 속상한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어.

엄마가 걸핏하면 때린다는 얘기. 같은 반 여자애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얘기.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는데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다는 얘기.

처음에는 내가 말을 더 많이 했는데, 어느새 그 애가 얘기하고 나는 듣기만 하게 됐어.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 애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좋아하는 남자애를 따라다니던 여자애들한테 계속 괴롭힘을 당했던 거야.

만날 때마다 그 애는 자기를 괴롭힌 애들이 밉다고 했어. 그걸 보고도 모른 척한 반 애들도 똑같이 밉다고 했고.

반 애들 욕을 하다가, 말도 안 되는 복수 계획을 늘어놓곤 했어.

나는 별말 없이 맞장구만 쳤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애는 엇나가기 시작했어.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늘었고, 보란 듯이 담배도 피웠어. 집안 사정도 점점 나빠져서 한밤중에 엄마와 큰 소리로 싸우는 날이 있었지.

한 번은 경찰이 그 애를 데리러 왔어.

그 무렵부터 이웃들과 사이도 나빠졌어. 그 애 집에 욕이 적힌 전단지가 붙거나 낙서가 생겼어.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고.

한 번은 우편함에서 잘게 토막 난 고양이가 나왔어.

우리 엄마도 이제 그 애랑 어울리지 말라고 했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 애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됐어. 나도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어졌지.

몰라보게 늙은 그 애 어머니가 그러셨어.

낮에는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밥도 문 앞에 놓아둬야 한다고.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만 잠깐 나온다고.

오랜만에 만나러 갔지만 그 애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어. 문 너머에서 돌아가라고 소리만 질렀어.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이 없었고.

한 번은 문이 열리나 싶더니 내게 된장국을 끼얹었어.

잠깐 보인 그 애는 창백하고 바싹 말라 있었어. 꼭 물기를 짜낸 걸레 같았어.

그래도 나는 날마다 찾아갔어.

그 일로 부모님과 싸웠고, 어렵게 사귄 친구와도 멀어졌어. 그래도 매일 그 애 방 앞에 갔어.

얼마쯤 지나자 그 애가 문 너머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나쁜 친구들을 사귀었다는 얘기. 도둑질이 버릇이 돼서 경찰에 잡혔다는 얘기.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도망갔다는 얘기. 도와달라고 엄마에게 털어놨더니 거의 제정신이 아닐 만큼 화를 내며 때렸다는 얘기.

결국 아이를 지웠다는 얘기.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얘기. 손목을 그었던 얘기.

예전처럼 그 애가 말하고 나는 맞장구를 쳤어. 내 생각을 물어보면 최대한 무난하게 대답했어.

그러다 그 애가 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어.

아르바이트도 구했고, 조금씩 밝아졌어. 그 애 어머니는 울면서 내게 고맙다고 하셨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애가 근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

아래에 나무가 있었고 높이도 아주 높지는 않아서 목숨은 건졌어. 하지만 척추를 다쳐서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했어.

병원 침대에 누운 그 애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어. 엄마와 나한테 너무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뛰어내렸다는 거야.

나는 우는 그 애를 달랬어. 누워서 우는 사람을 위로하는 건 쉽지 않더라.

그러다 청혼했어. 결혼을 생각하고 나랑 사귀어 달라고 했지.

그 애는 몸 안의 눈물을 전부 쏟아내려는 사람처럼 울었어.

“정말? 나 같은 애라도 괜찮아? 진짜 괜찮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어.

나는 줄곧 네가 좋았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반 애들 욕을 할 때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못된 짓을 할 때도.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푸념만 쏟아낼 때도.

엄마가 때린다며 울면서 털어놓을 때도.

방에 틀어박혀 몰라보게 말라버렸을 때도.

초등학교 때, 네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누구인지 그 애를 따라다니던 여자애들에게 알려줬을 때도.

네 집 우편함에 넣으려고 고양이를 잘게 토막 낼 때도.

다리에 감각을 잃고, 하얀 침대에 파묻힐 듯 작게 누워 있는 지금도.

나는 언제나 네가 좋았어.

이제야 완전히,

너는 나만의 여자가 됐어.

우리, 곧 결혼합니다.

출처: 아카라이브 괴담미스터리 채널 · 「[2CH 괴담] 순정파」 · 게시자: 흑백레몬

제공된 글에 적힌 한국어 번역 출처: 로어쟁이 사야. 2ch 원문 작성자는 제공된 파일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문장·문단 편집 및 삽화: K-Re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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